인도 인물 세밀화와 한국(조선)의 영정 비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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작성일 23-01-24 15:1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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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런 초상화의 기원은 이집트의 초상 조각에서 찾을 수 있는데, 이는 기원전 3천년 이전에 제작된 것이다. 하지만 서양에서 전문적인 초상화가가 출연한 것은 16세기 한스 홀바인(Hans Holbein the Younger : 1497/98-1543)의 등장 이후로 보인다.
체제공, 윤증, 마하라자, 샤 자한과 뭄타즈 마할의 초상
이후 조선시대는 진실로 ‘초상화의 나라’ 라고 할만 한데 현재 남아있는 초상화만 최소 3천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. 이는 이명기의 ‘윤증 초상 이명기, <윤증초상>, 좌 구법, 1788년, 견본채식, 118.6×83.8cm 보물 1495호, 논산 후손 소장, 국사 편찬 위원회 기탁./ 우 신법, 1788년, 견본채색, 118×83cm, 보물 1495호, 논산 후손 소장, 충남history(역사) 박물관 기탁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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’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는데, 그는 같은 인물을 구법과 신법으로 각각 그려 그 차이를 한눈에 비교할 수 있게 해 놓았다. 이런 초상화의 기원은 이집트의 초상 조각에서 찾을 수 있는데, 이는 기원전 3천년 이전에 제작된 것이다. 이주헌,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: 알찬 theory 에서 행복한 감상까지, 학고재, 200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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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거 수 세기동안 동·서양을 막론하고 초상화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다.
이 망실되었지만, 다행스럽게도 태조의 어진 세 점과 세조의 어진 한점이 남아있어 어렵게나마 조선 전기의 초상화 및 어진을 연구할 수 있다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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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나라의 경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초상화는 국보 111호로 지정된 회헌 안향의 초상(1318년 충숙왕 5년)이다. 하지만 서양에서 전문적인 초상화가가 출연한 것은 16세기 한스 홀바인(Hans Holbein the Younger : 1497/98-1543)의 등장 이후로 보인다. 비록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, 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초상화는 그려진 대상의 권위와 위엄, 품위 등을 드러내는 效果(효과)적인 도구였다는 점에서 왕과 귀족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. 이 초상화를 포함하여 고려인의 초상화는 현재 단 세 점만이 남아있다아 회헌 안향 영정(13~14세기), 익재 이제현상(14세기), 고려 공민왕조 국사 나옹화상 초상(14세기 후반)
과거 수 세기동안 동·서양을 막론하고 초상화에 대한 열기는 뜨거웠다. 이주헌,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: 알찬 이론에서 행복한 감상까지, 학고재, 2003
인도 인물 세밀화와 한국(조선)의 영정 비교
조선의 초상화는 조선후기인 18세기경에 급격한 alteration(변화) 를 겪게 되는데, 이 alteration(변화) 는 초상화에 특별한 조예가 없는 사람들이 봐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컸다. 안타깝게도 16세기말 임진왜란으로 조선 전기의 많은 초상화와 어진 어진(御眞) : 임금의 화상(畵像)이나 사진.
설명
다. 비록 제작에 오랜 시간이 걸리고, 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초상화는 그려진 대상의 권위와 위엄, 품위 등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도구였다는 점에서 왕과 귀족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.


